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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처럼 사회적, 정치적 논쟁에 자주 휩싸이는 예술분야가 또 있을까. 사진이 그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라 해도 피사체 선택 등에서 작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체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그 짧은 역사에 비해 사회적 논쟁을 빚은 사례가 유난히 많은데, 이것은 사진이 최초로 대량복제가 가능한 매체였다는 것과, 사진은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는 통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는 이처럼 내외부적인 논쟁을 낳아서 유명해진 사진과, 그 사진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논쟁의 유형은 다양하다. 사진 자체에 관련된 논쟁이 있는가 하면, 사진을 둘러싸고 소송이 일어나는 등 외적인 요인으로 논쟁을 빚은 경우도 있고, 사진 자체는 평범하지만 유명한 사건의 경과를 단적으로 표현한 사진이어서 유명해진 사례도 있다.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는 유명한 사진 관련 논쟁들을 시대별로 정리해나가며, 당시 사회의 편린을 읽어낸다. 첫 논쟁은 사진을 예술품으로 간주해야하느냐였다. 한동안 판화가가 화가보다 급이 낮은 예술가 내지는 기술자 취급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단순히 카메라를 조정해 나온 결과물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처럼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분분했다. 이 논란이 논쟁으로 비화된 것은 이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피에르송 초상 사진의표절 사건 때문이었다. 피에르송이 찍은 카우보르 백작의 초상 사진이 좋은 평을 받고 유명세를 타자, 경쟁 사진사가 무단 복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피에르송이 이 사건은 불법복제와 위조라며 소송을 걸자, 사진은 예술인가에 대한 담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이다. 예술이라면 저작권이 있는 것이고, 예술이 아니라면 저작권이 없으니 타인의 무단복제는 위법이 아니다. 오랜 공방 끝에 피사체를 선택하고 구도를 정하는 것은 예술적 소양이 있어야 하니, 사진도 예술의 분야로 인정한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그 외에도 사진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포착했다고 알려진 사진이 실은 재연 장면이나 연출한 장면을 찍었다고 밝혀진 사례도 여럿 있고,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쟁, 사진작가의 주관이 개입된 사진을 객관적인 증거처럼 인식해야하느냐의 논쟁 등도 치열하게 불타올랐다. 사진작가가 찍을 떄는 그저 피사체를 잘 담아내는 것만을 생각했을 사진들이, 본의 아니게 논쟁에 휘말리거나 분쟁의 아이콘이 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사진기술이 발전하면서, 시민사회가 변화하면서 사진은 더욱 다채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논쟁이 된 사진의 역사>는 단순히 유명한 사진과 에피소드 모음집이 아니라, 사진을 둘러싼 사회 담론의 변천사이기도 한 것이다.
찰칵, 찰칵, 의미 없이 셔터를 누르지 마라
저작권과 초상권, 아동 나체, 포르노, 작가의 윤리,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 등
역사 속에서 끊임 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사진 73점 이야기!

사진 열풍이 일고 있는 요즘, 아무도 사진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보다 기술적이고 리얼한 사진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 사진은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이 예술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저작권과 초상권, 내용 조작, 아동 나체, 포르노, 사진가의 윤리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책에 실린 73장의 사진은 사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오늘날의 잣대로 보아도 전시나 출간이 불투명할 정도로 난감한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익히 보아 온, 그래서 논쟁이 될 만한 어떤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놓인 논쟁은 더욱 뜨겁고 충격적이다.

나사에서 찍은 달 탐사 사진, 루마니아의 인종 학살 참상을 담은 사진,
한 남자가 시체더미에서 울고 있는 사진, 아프리카의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사진
단 한 장의 사진이 당대 사회의 모순과 거짓,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낼 때

1969년에 나사에서 찍은 달 탐사 사진은 논쟁의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이 사진이 연출되었다고 확신했다. 소련과의 달 탐사 경쟁에 안달이 난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시대의 사기극을 펼쳤다는 것이다.(164쪽) 1989년 로버트 마스가 찍은 루마니아의 인종 학살 참상은 사진의 진실이란 무엇인지 새삼 경계하게 만드는 사진이다.(236쪽) 한 남자가 시체 더미 위에서 울고 있다. 싸늘히 식은 갓난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문맥상 학살의 현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잔혹한 루마니아 독재 정부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시신들은 공동묘지에서 파낸 것이고, 아이는 며칠 전 식중독으로 돌연사 했을 뿐이다.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독재 정권이 포악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기 주도자들이 연출한 현장을 사진 기자들이 아무 의심 없이 찍고 배포한 것이다. 거짓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타고 이렇게 진실화한다.

2008년 아르퀴리알 현대예술도서상 수상작

물론 누구나 사진을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논쟁은 오히려 정면에서 포착해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옳다. 사진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성격까지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 생각 없이 눌렀던 카메라의 셔터들은 묻고 있다. 당신은 그 사진을 어떤 생각으로 찍었는가? 책을 읽으며 사진의 진짜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차례

사진에서 법적 권리 문제, 다니엘 지라르댕
겉모습의 이면,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이폴리트 바야르, 익사자의 자화상, 1840
펠릭스 나다르 , 아드리앵 투르나숑, 어릿광대로 분장한 무언극 배우 드뷔로: 놀람, 1854~1855
마예르, 피에르송,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의 초상, 1856
루이스 캐럴, 거지 소녀로 분장한 앨리스, 1859
브뤼노 브라케, 파리 코뮌, 땅바닥에 쓰러진 동상, 1871
외젠 아페르, 아르퀼 도미니크회 수사들의 학살, 1872
나폴레옹 사로니, 오스카 와일드 초상, 1882
세콘도 피아, 토리노 수의, 1898
막스 프리스터, 빌리 빌케, 비스마르크의 임종, 1898
루돌프 레네르트, 에른스트 란트로크, 처녀의 초상, 1910~1914
루이스 하인, 텍사스 목화밭에서 목화 줍는 소녀, 1912
프랜시스 그리피스, 아이리스에게 꽃을 주는 요정, 1920
찰스 스펜서 채플린, 채플린 대 아마도르의 소송에서 제출된 단편, B, 1925
만 레이, 흑과 백, 1926
피에르 질야르, 마르크 비쇼프, 첫 번째 비교 습작, 1927
루이스 하인, 리벳공 세 사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뉴욕, 1931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이탈리아, 1933
로버트 카파, 공화파 병사의 죽음, 1936
캡틴 프로밴드, 인드르 쉬라, 갈색 숙녀, 1936
작자 미상, 이오시프 스탈린과 보로실로프, 몰로토프, 레조프, 1930년대
작자 미상, 에스파냐 전쟁, 1936~1939 또는 모로코 리프 전쟁, 1921~1926
작자 미상, 피티비에르 수용소, 1941
작자 미상, 민스크의 여주인공, 1941
작자 미상, 유대인 학대, 리보프로 추정, 폴란드, 1941
발터 프렌츠, V2 로켓 신관을 조립하는 수용자들, 도라, 독일, 1944
작자 미상,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1944
작자 미상, 영국군 사진단, 베르겐벨젠, 1945
데이비드 E. 셔먼, 히틀러 욕조에 있는 리 밀러, 뮌헨, 독일, 1945
작자 미상, 아돌프 히틀러로 추정되는 시신, 1945
예브게니 칼데, 라이히슈타크에 걸린 붉은 깃발, 1945
보리스 리프니츠키, 장 폴 사르트르, 앙투안 극장, 파리, 1946
로베르 두아노, 파리 시청 앞의 키스, 1950
리처드 애버던, 코끼리와 도비마,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야회복, 겨울 서커스, 파리, 1955
알베르토 코르다, 영웅적 게릴라, 1960
마르크 가랑제, 세리드 바르카운의 초상, 1960
라디슬라프 빌리크, 프라하의 봄, 브라티슬라바, 1968
나사, 달 위의 버즈 올드린, 1969
이리나 이오네스코, 에바, 뮈샤 궁, 1970
래리 클라크, 무제, 1970
호르스트 파스, 방글라데시, 1971
닉 우트, 트랑 방의 소녀, 베트남, 1972
기 부르댕, 프렌치 보그, 1972
이언 브래드쇼, 더 트윅커넘 스트리커, 1974
개리 그로스, 무제, 1975
작자 미상, 인질, 알도 모로, 1978
로버트 매이플소프, 자화상, 1978
자한기르 라즈미, 쿠르드 반군의 처형, 1979
아트 로저스, 강아지, 1980
그레이엄 오벤든, 모드 휴스, 1984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헬, 에티오피아, 1984~1985
프랑크 푸르니에, 오마이라 산체스, 아르메로, 콜롬비아, 1985
아넬리스 스트르바, 욕조 속의 소냐, 1985
안드레스 세라노, 그리스도에게 오줌을 끼얹다, 1987
조크 스터지스, 크리스티나, 미스티, 앨리사, 북캘리포니아, 1989
로버트 마스, 티미쇼아라, 루마니아, 1989
르네 추르허, 눈의 초상, 맹인 병원, 1990~1991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입맞춤하는 수녀, 1992
케빈 카터, 굶주려 죽어 가는 소녀를 노려보는 독수리, 수단, 1993
폴 왓슨, 추락한 블랙 호크, 모가디슈, 소말리아, 1993
볼프강 볼츠,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포장한 국회 의사당, 베를린, 1971~1995
아바스, 세계 청년의 날, 파리, 1997
자크 랑주뱅, 다이애나 비의 마지막 사진, 파리, 1997
알베르토 소르벨리, 걸작에 뛰어들기, 1997, 다비드 TV 사진
지젤라 블라우, 크리스토프 멜리, 1997
톰 포사이스, 푸드 체인 바비, 연작, 1998
뤼크 들라예, 타자, 1999
스티븐 마이젤, 이브 생 로랑 향수 광고를 위해 포즈를 취한 소피 달, 2000
토드 마이젤, 손, 9/11, 뉴욕, 2001
믈라덴 안토노브, 테토보 마을 언덕 위의 포연, 스코페 북동 50킬로미터, 2001
마이클 라이트, 오크, 8.9메가톤, 에니위톡 환초 1958, 2003
작자 미상, 아부 그라이브, 이라크, 2003
데이비드 라샤펠, 안젤리나 졸리, 2004
이자벨 파브르, 스펜서 투니크의 사진 설치 작품, 알레치 빙하, 스위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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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