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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EBS 문제집을 풀다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인 <시 (Poetry, 2010)>의 줄거리를 읽었다. 소설가로서의 이창동뿐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발표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미처 보지 못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접하며 과연 우리 시대에 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시를 쓰는 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추악하기조차 한 현실에서 과연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어쩌면 「창비시선」 200권 돌파를 기념하며 신경림 시인이 엮은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를 손에 쥔 것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리라. 이미 내 나름의 정답을 갖고 있지만 이 시집을 통해 그 답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 그것이 이 시집에 눈길이 머문 까닭일 것이라 생각한다.
70년대와 80년대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 시인선」, 「민음의 시」 등의 시를 즐겨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시집을 손에 든 순간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고은의 ‘문의(文義)마을에 가서’를 필두로 하여 신경림의 ‘파장(罷場)’,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노래’,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의 시인과 시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그러나 뜨거웠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의 목차에 있는 시인과 시들은 70년대 이후 우리 시사를 대표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이름을 넘어 시대의 아픔에 대한 고민과 뜨거웠던 열정에 대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이름들이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시집의 말미에서 신경림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 시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에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역시 시는 위기에 처해 있다. 어쩌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극히 제한된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부상의 수준으로 전락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란 좋은 것, 훌륭한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시가 예술형태의 최고 수준을 규범한다는 사실만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비록 소수를 상대로 하지만 그 대화가 산문이나 영화나 인터넷이 가지지 못한 진실과 힘을 갖는다면 시는 존재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시도 바뀌게 마련이다. 「창비시선」 200권을 돌아보면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시가 달라져야 할 시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치열한 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달라진다는 것은 변화한 시대의 참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지 대중에게 영합함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엮은이의 말」에서
최승호의 ‘북어’, 김남주 ‘학살 1’, 기형도 ‘빈집’, 서홍관 ‘등화관제’ 등 몇몇 작품에서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현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에서는 현실의 어둠을 그리더라도 그 속에서 꺼지지 않고 빛나는 희망을 그리고 있다. 배가 고파 울다 지쳐 잠이 들지만 눈빛이 불타는 아이(황명걸 ‘한국의 아이’)와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은하수를 건너 만나야 하는 연인들(문병란 ‘직녀에게’),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녹지 않을 눈사람(정호승 ‘맹인 부부 가수’)을 통해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전하는 진실과 희망은 어쩌면 절망적이고 추악하기까지 한 현실 속에서 시가 왜 존재해야 하고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김정환, ‘철길’에서
이 시집은 창비 시인들을 중심으로 문지 시인은 물론이고 박노해나 백무산 같은 노동자 시인 그리고 90년대 이후에 등단한 시인들까지 「창비시선」 200권의 역사와 동시대를 살며 그 시대의 아픔을 나누고, 꿈과 희망을 노래한 시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준다. 특히나 나의 20대 역시 이 시집에 실린 시들과 함께 보내왔기에 마치 풍성한 한가위 선물을 받은 듯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이전부터 좋아하던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기쁨이었지만, 잊고 있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시들을 만난 것 또한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시가 여전히 우리들의 삶을 노래하고 그 속에서 슬픔을 이겨낼 힘을 주는 한, 시는 아직 위기가 아니라 감히 말하고 싶다.
숲속에 홀로 누운 밤이면
나의 온몸은 나침반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
밤새 외눈의 그대 깜빡일 때마다
나의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없다
극과 극의 사랑이여
단 하룻밤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 -이원규, ‘북극성’
한국일보사 제정 제36회 출판문화상을 수상. 1975년 3월 계간 창작과 비평 과 평단의 주역들에 의해 기획 발간되기 시작한 국내 최초의 시선 시리즈, 그 200번째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 그 시대의 중요한 문학적 결실을 담은 중견 시인들의 시집과 젊은 시인들의 처녀 시집을 과감히 발행하여 안일과 순응주의에 빠진 시단에 큰 반성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시의 흐름을 힘차게 주도해 나가고 있다.
고 은 -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신경림 - 罷場
이성부 - 봄
강은교 - 풀잎
황동규 - 조그만 사랑노래
조태일 - 國土 序詩
황명걸 - 韓國의 아이
최하림 - 겨울의 사랑
민 영 - 별빛
정진규 - 여물어 벙그는 알밤처럼
김준태 - 참깨를 털면서
정현종 - 파랗게, 땅 전체를
정희성 - 이곳에 살기 위하여
홍신선 - 秋夕날
김명인 - 東豆川 I
김광규 - 어린 게의 죽음
마종기 - 바람의 말
양성우 - 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이동순 - 서흥김씨 內簡
김명수 - 月蝕
이근배 - 냉이꽃
문병란 - 織女에게
오규원 - 마음이 가난한 者
하종오 - 벼는 벼끼는 피는 피끼리
최승자 - 이 時代의 사랑
오세영 - 질그릇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정호승 - 맹인 부부 가수
김정환 - 철길
최승호 - 北魚
황지우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곽재구 - 沙平驛에서
최두석 - 대꽃 7
박노해 - 시다의 꿈
김용택 - 섬진강 5
이시영 - 밤
나태주 - 하물며
이성복 - 남해 금산
노향림 - 꿈
송수권 - 시골길 또는 술통
김사인 - 밤에 쓰는 편지 3
윤재철 - 담쟁이
김용락 - 푸른 별
김남주 - 학살 1
박남철 - 겨울강
백무산 - 노동의 밥
이성선 - 나무
기형도 - 빈집
서홍관 - 등화관제
박라연 -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조정권 - 山頂墓地 5
고정희 - 아우슈비츠 1
장석남 - 그리운 시냇가
유 하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
김기택 - 태아의 잠 1
임영조 - 갈대는 배후가 없다
허수경 - 울고 있는 가수
심호택 - 하늘밥도둑
고형렬 - 사랑
도종환 - 우기
강형철 - 사랑을 위한 각서 8
김윤배 - 강물은, 변절도 아름답다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나희덕 - 찬비 내리고
이진명 - 넓은 나뭇잎
박형준 - 어머니
최영미 - 선운사에서
이가림 - 석류
이영진 - 5월은 내게
고재종 - 날랜 사랑
박 철 - 나무, 파라마타 가는 길
서정춘 - 竹篇 1
이재무 - 마음의 짐승
이은봉 - 호박넝쿨을 보며
함민복 - 서울역 그 식당
신현림 - 나의 싸움
김혜순 - 환한 걸레
박영근 - 밤, 꽃
이원규 - 북극성
천양희 - 몽산포
이상국 - 禪林院址에 가서
윤중호 - 靑山을 부른다 10
박주택 -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이문재 - 마음의 오지
김진경 - 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
최영철 - 백일홍
송찬호 - 동백이 활짝
정복여 -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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